Serendipity 2022

난 출근길 지하철에서 무엇을 본 것인가?

광개토황 2022. 3. 16. 14:37

아침 바쁜 출근길, 지하철에서 빠져나와 계단을 오르려할 때다. 어떤 아주머니가 계단을 급하게 내려오면서 나를 툭 치고 지나 지하철에 오른다. 내가 내렸던 바로 그 지하철. 

 

속으로 '미안하다고 하지도 않고 뛰어가네' 했다.

근데 내 발 앞에는 그 아주머니가 떨어뜨린 지갑이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던 내가 크게 소리쳤다. 

 

 

"아주머니, 지갑 흘렸어요."

 

 

아주 찰나였지만 원래 큰 목소리를 지닌 내 목소리가 이어폰을 끼고 있어 아마도 더 크게 울려퍼졌으리라.

아주머니는 지하철에 올라타 쳐다도 안보고 있다. 그 지하철을 놓치기 싫어 뛰었겠지.

허리를 숙여 지갑을 집어들고 지하철 입구로 뛰었다. 그리고 지갑을 건네드렸다.

 

 

"아주머니, 지갑 흘렸어요. 여기"

 

 

낼름 받으시는데 고맙다는 말은 커녕 찌푸리고 있다. 마스크 너머 표정이지만 다 보인다.

살짝 기분나쁠 뻔했다. 하지만 이내 오늘 좋은 일해서 기분좋아하는 마음으로 돌아섰다.

 

 

아침에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에서 딱 작년 오늘 있었던 일이 보였다. 작년 오늘도 아주 작은 선행을 했었구나 하는 마음에 더 없이 기쁜 날이다. 사실 선행이란 게 뭐 대단할 거 있겠나. 그냥 조그만 도움의 손길, 마음의 여유아니겠는가. 작년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아래에 그대로 옮겨왔다.

 

 

- 2021년 3월 16일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 옮겨옴 -

 

 

판교역에서 지하철 환승을 기다리는 데 할머니 한 분이 내게 다가와 불쑥 종이 한장을 내미신다. 아주 작고 단아한 할머니 손에 있는 종이는 코팅이 되어 있고 그 속에는 본인의 행선지를 정리해놓았다.

 

<여주ㅡ판교ㅡ강남역ㅡ교대역ㅡ서초역ㅡ방배역>

 

여주에서 방배역으로 가시는 길인데, 할머니께서 내게 이러신다.

"내가 올해 여든넷이야. 여주를 나혼자 찾아갔어. 근데 가끔 정신을 잃어. 아무것도 생각이 안날 때가 있어."

그러시면서 어떻게 가야하는지 묻고 계셨다. 몹시 불안해보였다.

 

"어르신, 이번 지하철타고 종점역까지 끝까지 타고 가셔서 사람들 다 내릴 때 함께 내리세요. 그리고 2호선으로 갈아타시면 됩니다."

 

대답을 해놓고는 할머니께서 이해하시는지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불안해보였다.

그때 지하철은 들어왔고 함께 올라탔다. 할머니는 둘러보시더니 내게 옆으로 오라고 손짓을 하셨다.

 

"옆에서 같이 가줘."

 

못내 불안하신거 같았다. 난 2정거장후에 내려야하는데, 그동안만이라도 마음 편하게 가실 수 있음 좋겠다는 심정으로 말벗이 되기로 했다. 그 짧은 시간에 꽤 많은 대회가 오갔다.

 

할머니께서는 계속 질문하신다. 어떻게 가는지에 대해...

 

 

"2호선, 방배역. 2호선, 방배역"

 

 

손가락 2개를 펴시고 계속 되뇌이다가는 또 물으신다.

 

 

"어떻게 가야하지? 여주에서 오면서 다시 여주 돌아갈 뻔했어. 길 가르쳐줘서 고마워. 이 나이가 되고 길이 생각 안 날때 참 서러워"

 

할머니는 단아하고 고우셨다. 셈하던 손을 보니 참 곱게 살아오셨구나 싶을 정도로 고와 보였다. 차림새도 깔끔하셨고. 그런데 머릿속이 마음대로 안되시나보다 생각하니 참 마음이 무거웠다. 갑자기 시골에 계신 엄마 생각이...만일 엄마가 지금 이러고 있다면...

 

"어르신 걱정마세요. 제가 강남역 가서 안내해 드릴게요."

 

 

너무 고마워하신다. 이 시간에 내가 다른 무슨 가치를 만들 수 있을까? 안하면 후회할 행동. 그걸 결정한 내가 내게 고마웠다.

 

내리기전에 우리 옆에 서 있던 청년(?)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둘의 대화 맥락을 알 거라는 기대에 내가 물었다.

 

"혹시 강남역에 내리셔서 2호선 갈아 타시나요?"

 

 

살짝 당황한 그 청년은 살짝 웃으며 네. 라고 답했다.

 

 

"혹시 어느 방향으로 가세요? 목적지가...?"

 

 

"방배역으로 갑니다."

 

 

와 어쩌나 반가운지. 여차저차 사정 이야기하고 할머니 방배역에 내리실 때 함께 내려 달라는 부탁을 했다.

흔쾌히 그렇게 하겠단다. 아마도 둘의 대화가 들렸을거다. 할머니 목소리는 작았지만 내 목소리는 아무리 감추어도 크다.

 

강남역에서 내려서 청년과 함께 가시는 할머니께 작별인사를 고했다. 계속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도 다 인연이야. 잘 사시게"

 

할머니는 둘째 따님 댁에 가는 길이라 하셨다. 지하철안에서 따님께 전화하셨냐 묻고 왠만하면 따님과 함께 다니세요라고 말씀을 드렸다.

 

"우리 딸은 사업하느라 바빠. 근데 우리 딸이 올해 쉰 아홉이야. 얘도 깜빡깜빡한대" 하시면서 씩 웃으셨다. 터지는 웃음을 한참 참아야했다.

 

비즈니스 체력을 위해, 내 건강한 삶을 위해 동네 뒷산을 오른지 3일째, 할머니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간다.

 

아주 작지만 뿌듯함을 안고 지하철 반대 방향에 올랐을 때 씨익 미소가 나왔다.

 

괜히 므흣해 :)
2022.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