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연결의 강한 힘

[황성진의 소셜이야기] 디지털 네이티브 (digital natives)

광개토황 2014. 10. 8. 07:06

 




디지털 네이티브 (digital natives)라는 말은 디지털 생활환경으로의 사회적 변화에 따라 디지털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젊은 세대를 말하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아닌 지금 태어난 아이들을 보면,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따로 교육을 받지 않았는데도 아주 능숙하게 그 기기들을 다루는 걸 보게 된다. 마치 그들의 DNA에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그 무언가처럼, 아이들은 두려움도 없고 망설임도 없다.

 

유투브를 검색해 보면, 심지어 18개월짜리 아이가 아이패드를 능숙하게 다루는 영상을 보게 되기도 한다. 이런 영상은 한 두 개가 아니다. 우스운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어쩌면 아이들 태어날 때부터 핏속에 이와 같은 유전인자가 흐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런 나의 이야기를 철학적인 얘기 같으면서도 실질적인 얘기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것은 지금의 신세대의 성장 방식이고 소통 방식이다.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도 그렇지만, 새로운 세대들은 카카오톡이나 소셜을 통해서 소통하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이 일에 너무나 능숙하고 익숙하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은 새로운 이 세대들이 지금까지의 모든 생태계를 바꾸고 있다는 거다. 스마트폰 관련 사업을 주도하고, 어플리케이션을 만든다.

 

당신은 혹시 알고 있는가? 세계 인구 70억중에 50%는 30세 이하라는 사실을 말이다. 다른 의미로 보자면, 세계 인구의 50%는 디지털 네이티브 (digital natives)이거나 잠정적 디지털 DNA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이야기이다. 물론, 개발도상국들에는 아직도 우리의 현재 디지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기회만 주어지면, 언제든 디지털 쇼크가 일상이 되는 때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검토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하다. 인류의 수명이 길어진 오늘날, 현재의 30세들과 소통을 한다고 해도 100세까지 적어도 70년의 커뮤니케이션이 지속될 거라는 이야기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소통 방식을 이해 못하면 전혀 그들과 소통을 할 수가 없다는 거다. 전 세계 인구의 50%와는 제대로 된  소통을 못할 수도 있다는 귀결에 이르는 것이다. 실질적 소비층인 이들에게 물건을 팔수도 없다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작금의 시대는 신세대들이 만들어가는 굉장히 액티브한 시대이다. 그들의 삶의 방식과 소통 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생존과 관련이 있는 일이다. 꼭 나 개인만의 생존과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서로 고민하고 상생할 수 있는 기틀이 바로 이것들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기성세대들은 그동안 해 왔던 자신들의 소통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직접 눈을 맞대고 하는 대화 방식이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눈을 마주치고 싸우는 것보다, 담백하고 직접적인 새로운 세대들의 소통 방식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소통 방식에 대해 굳이 자신의 방식이 좋다며 그것을 고집해야 할 이유는 없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오글거리는 말들을 상대방이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스마트폰 상에서는 서슴없이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멘트들을 두고두고 다시 보면서 유쾌한 느낌들을 가질 수도 있다.

 

소통에 관점에서 보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디바이스가 바뀌고, 툴이 바뀌고, 행동 양식이 바뀐다고 해서 그 본질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메시지 창으로 서로 ㅋㅋㅋ을 날리면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소통이며 서로의 감정을 전달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계속해서 ‘소통’이라는 것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지금의 새로운 방식을 다 막아버릴 수도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기성 세대들이 자신만의 방법들로 인해 ‘관계적 표류’에 빠지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