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연결의 강한 힘

[황성진의 소셜이야기] 연결 사회의 불편한 이면

광개토황 2014. 10. 8. 07:01

 





얼마 전, 아들과 함께 야구장엘 갔었다.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흥분되고 신나는 분위기, 아들과의 즐거운 한 때로 하루 종일 유쾌한 느낌이 들었던 시간이었다. 야구장에는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야구장만의 매력이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여러 모습들이 있다. 역동감 넘치는 선수들의 파이팅도 그렇지만, 치어리더들의 생동감 넘치는 율동, 맛난 간식, 사람들의 함성, 홈런이나 파울볼을 캐치하려는 사람들의 움직임들.... 이 모든 것들이 그 공간을 즐거움의 냄새로 가득 차게 한다.

 

야구장엔 구단마다 휴식시간에 이벤트를 많이 진행한다. 그 중 하나가 야구장을 웃음과 행복한 공간으로 만드는 ‘키스타임’. 전광판 카메라의 주인공이 되는 커플은 이유를 묻지 않고 키스를 해야만 한다. 어쩌면, 한국 프로야구에서만 볼 수 있는 진기한 광경인지도 모른다. 


한번은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고객사인 모 프로야구단과 업무미팅을 마치고 함께 야구를 관람한 적이 있다. 이번 경기에도 전광판에는 예외 없이 ‘키스타임’이 있었다. 나는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전광판 영상을 스마트폰 캠으로 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커플, 두 번째 커플.... 그런데 문제는 마지막 커플이었다. 난데 없이 카메라는 남녀 커플이 아니라, 남남 커플 학생들을 지목했다. 그날 단체로 관람온 고등학교 남학생들이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한동안 멈칫하던 두 사람은 외부의 시선과 카메라의 외압(?)에 못 이겨 가볍게 키스를 했다. 주변 사람들은 폭소하기 시작 했다. 그런데, 이후에 짓궂은 전광판 운영자는 두 남남커플에게 “좀 더 깊고 진하게 키스~”를 요구했고... 결국 둘의 좀 더 과감한 스킨쉽 이후에 키스타임은 끝이 났다. 누가 봐도 연출된 모습이지만 그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폭소속에 즐거워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날의 이색적인 여운은 그 날 당일로 끝나지 않았다. 나는 그 날의 익살스런 모습을 바로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런데 전혀 의외의 상황이 생겨 버렸다. 몇 일도 되지 않아, 내가 올린 영상은 몇 백 만 명이 조회를 했고, ‘좋아요’ 클릭 수도 10만명을 훌쩍 넘겨 버렸다. 영상은 세웃동 (세상에서 가장 웃긴 동영상) 페이지에서도 퍼갔고, 누군가는 허락을 받지 않고 이 영상을 그대로 스크랩핑 해서 유투브에도 올려 버렸다. 대략 추산하기에 대한민국에서 600~700만명 정도는 이 영상을 보지 않았을까?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자, 나는 약간 걱정이 되었다. 최초 영상을 내보낸 사람은 전광판 운영자이긴 하지만, 이게 내 손에 의해 온라인에서 의외의 선전을 하며 히트를 하자 남남 커플 학생들의 ‘초상권’에 문제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의 목적으로 올라가긴 한 거지만, 너무 히트해도 걱정인 것이다. 현재 나는 해당 영상을 내렸다.

 

어찌 보면, 이것은 연결 사회의 또 다른 이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에 남겨진 흔적이 사라지지 않아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할 수 있다. 언젠가 TV 연예프로에서 한 여배우가 온라인 정보 때문에 생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인터넷 포털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면 딸려 나오는 ‘연관 검색어’ 때문에 곤혹 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는 군인이고 보수적인 성품을 가지고 계신데, 자신의 이름을 검색 하면 나오는 ‘아무개 노출’, ‘아무개 불륜’ 등의 연관 검색어 때문에 불필요한 해명을 해야 하는 상황들이 생긴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연예인들의 경우... 안티그룹이나, 뜻하지 않은 이유 때문에 상관도 없는 사람들과 스캔들이 불거지기도 하고, 이전 이성 친구들과의 관계 때문에 아주 오랜 후에까지 그와 관련된 기록들이 존재하게 되기도 한다. 비단 이것은 연예인들처럼 특별한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글로인해 인권침해가 생기기도 하고 이와 관련된 수많은 소송이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이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모두의 노력이다. 이것은 온프라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각자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가장 본질적인 것에 대한 우리의 각성만이 초연결 시대 속의 사회적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