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연결의 강한 힘

[황성진의 소셜이야기] 소셜이 롤모델을 만나게 하다 - 전하진 의원

광개토황 2014. 6. 27. 14:12

소셜이 롤모델을 만나게 하다 - 전하진 의원

 

제19대 국회의원인 전하진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나와 인연을 맺고 있던 특별한 사람 중 하나이다. 전하진 의원과의 인연을 가능하게 한 이면에는 역시 SNS라는 도구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현재 하진이 형이라고 부르는 전 의원과의 특별한 만남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 분의 삶과 관련이 있는 특별한 이력을 소개 하려고 한다.

 

대한민국의 IT 역사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 할 때 흔히들 떠올리는 두 회사가 있다. 하나는 지금의 안철수 의원이 대표로 있었던 ‘안랩’ 이었고 다른 하나가 바로 전하진 의원과 관련이 있는 ‘한글과 컴퓨터’였다. 90년대말 잘 나가던 한글과 컴퓨터는 재정난을 겪고 있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많은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 때, 자금을 투자하겠다고 나선 곳은 아이러니 하게도 ‘마이크로소프트’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한글과 컴퓨터에 투자를 하는 조건은 매우 심플했다. 500억을 투자하는 조건으로 더 이상의 한글 프로그램 개발을 멈추는 거였다. 개발을 멈춘다? 그랬다. 당시의 한국 사회는 ‘한글과 컴퓨터’의 한글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한글과 컴퓨터’의 경영 악화를 이용하여 프로그램 사용 인프라를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워드(Word)’로 전부 돌려세울 심산이었다.

 

당시 '한글과 컴퓨터'는 너무 급박하고 힘드니까 그 제안을 수락 했었다. 어떤 사람은 이를 두고 ‘500억에 나라의 영혼을 파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국의 문자인 ‘한글’을 쓰면서 정작 그 프로그램의 개발권은 외국 기업에 넘기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니 그런 말들이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국내외적인 비판이 일면서 이 때 구원투수로 신선하게 등장한 인물이 바로 국회의원 이전 시절의 하진이 형이었다.

 

당시에 하진이 형은 미국에서 모 회사의 경영인으로 한참 성공가도를 달리는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국내의 한글 관련 단체에서 세미나를 열면서 초청강사로 하진이형이 초대를 받는 일이 있게 되었다. 강의는 무척 인상적이었고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런데 그 세미나가 한글 관련 세미나이다 보니,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하진이 형을 두고 특별한 기류가 생성 되었다. “한글이 우리글인데, 마이크로소프트에 팔려 버리면 되겠나? 이건 치욕이다. 당신 같은 사람이 ‘한글과 컴퓨터’의 대표이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3일만에 하진이 형은 대표이사로 취임을 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이다. 하진이 형의 이력을 좀 더 살펴보면 그런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이것 외에도 많다는 걸 알게 된다. 훗날 하진이 형이 국회의원이 된 것도, 형의 역량을 눈여겨 보던 사람들에 의해 후보 등록 마감 2-3일전에 갑자기 전략공천이 되어 국회에 입성하였다. 공천되기 몇 일 전만해도 나와 술잔을 나누며 본인은 ‘정치 할 생각 없다’고 말하던 형이었다. 그랬던 사람이 별안간 국회의원이 된 것이다.

 

아무튼 하진이 형이 한글과 컴퓨터의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에, 당시 벤처붐과 맞물리면서 한글과 컴퓨터는 시가총액 2조의 가치까지 올라가게 된다. 이쯤 되면, 하진이 형은 구원 투수가 아니라, 하나의 역사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이 되었다. 하진이 형이 한참 유명할 때는 삼성 센스 노트북의 광고 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해에 하진이 형은 유력 단체들에서 부여하는 CEO 관련 상은 거의 휩쓸다시피 했다.


<그 당시 벤처기업인으로서의 꿈을 키우던 나의 롤모델이었다.>

 

나에게 ‘전하진’이라는 인물은 ‘성공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였고 좀 더 젊은 시절 나의 롤모델이었다. 2010년 여름 나는 트위터를 통해 나의 롤모델과 드디어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하진이 형은 트위터에 글을 올리곤 했는데, 공감가는 글이 많다 보니 나 역시 트윗 상에서 이런 저런 공감을 해 주곤 했다. 그 사이 우리는 서로 자연스럽게 온라인으로 대화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나 유력한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나는 너무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당시, 나는 다듬어지지 않은 문체로 출간 했던 ‘독한 놈이 이긴다’는 책의 저자였다.  그래서, 대화가 오가던 중 한마디 말을 툭하고 던졌다. “졸필이긴 하지만 책 한권 선물 하고 싶습니다.’ 그랬더니 하진이 형은 주소를 하나 보냈다. 그런데... 정말 특별한 인연이 되려고 그랬던 거였는지, 그 주소는 우리 회사가 있던 바로 길 건너 주소였다! “어? 거기 계세요? 우리 길만 건너면 거긴데. 차라리 제가 그냥 갖다 드릴게요. 저 차 한잔 주세요.” 하진이 형은 아주 유쾌하게 “그럼 오세요!” 라고 응해 주었다.

 

훗날 하진이 형은 나에 대해 이야기 하며, 자신을 그렇게 찾아준 나에 대해 정말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저서에도 우리의 에피소드는 소개되었다. 생각해보라.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10년전 내 마음을설레게 했던 인물이 SNS라는 도구를 통해 10년후에 나하고 이야기를 섞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바로 앞 건물에서 말이다!

 

10년 전이라면,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을 만날 방법이 없었다. 바로 소셜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종이컵에 식은 밀크 커피를 얻어 마시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내가 이전에 먹은 어떤 커피보다 맛있고 달콤한 커피였다. 하진이 형과의 유쾌하고 그림 같은 만남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

 

참 재밌었던 것은, 함께 이야기를 했는데 둘 사이의 코드가 너무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이었다. 우리는 둘 다 기업인이었음에도 비즈니스에 관한 것들은 하나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청소년교육에 관심이 많았는데 하진이 형도 그랬었고, 우린 그 아이들을 어떻게 격려 할 것인지에 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하진이 형과의 만남과 유대는 훗날 멋진 사람들과의 특별한 만남을 모토로 했던 ‘브릿지 피플’ 모임의 시작이 되었다. 이어지는 내용의 글을 통해 ‘브릿지피플’에 대한 좀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롤모델에서 창업동지로, 형으로 그렇게 함께 한 전하진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