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비보: 망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개폼잡다 쫄딱 망하고 깨달은 한가지

광개토황 2022. 8. 31. 11:46

나는 독립군이 아니다

 

 

"형은 꼭 독립군같아"

 

2018년 더운 여름날, 내 영혼을 갈아 만들어가던 쉐어앤케어(2015년 시작되었던 소셜기부플랫폼으로 50만 사용자와 함께 대한민국의 새로운 기부문화를 만들어갔다고 자부하는 서비스지만 수익모델부재로 3년만에 종료)가 망하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 친한 후배와 만나 술한잔을 기울이던 그 날. 후배는 내게 말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내심 흐뭇했다. 뭐랄까? 마치 내 고난의 시간을 위해 후배가 전해준 헌정사같았다. 그래서 난 되물었다.

 

 

"야 내가 무슨 독립군이야. 그냥 나누며 더불어 살자는 숭고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애를 썼을 뿐이지."

 

 

그러면서도 속으로 충만한 프라이드를 감추기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생각하는 독립군의 삶이란 숭고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내던지던 삶이었다. 과연 내가 이런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나할 정도로 아드레날린이 분출했다. 그리고 그 착각이 깨지는 데는 아주 짧은 시간만이 흘렀다. 후배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형! 독립군의 삶이란 게 말이지. 자신은 정말 숭고한 가치를 실현하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가족과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을 힘들게 해.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있는 재산 없는 재산 다 탕진하고 가족들과 가까운 사람들은 끌려가 고문당하고..."

 

 

순간 머리에 해머가 내려치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 기억엔 얼굴마저 붉게 타올랐다. 그리고 그 당황스러움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불과 몇 초전에 이 후배가 그래도 선배가 한 일에 대해 비록 망했지만 정말 훌륭한 일을 했다고 헌정하는 줄 알았던 내 자신이 그렇게 초라해질 수 없었다.

 

 

"그러네. 가만히 생각해보니 니 말이 맞구나. 내가 가진 것뿐만 아니라 여기 저기 다 끌어모아 세상을 구하겠다고 한 일로 인해 여럿 힘들게 만들었네"

 

 

후배 이야기의 요지는 독립군의 삶을 폄훼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 숭고한 삶을 사는 것은 분명 존경할 일이지만 내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해준 이야기였다. 내가 망하면서 내 가족은 물론 함께 일하던 직원들과 그 가족들, 투자자와 채권자 모두 힘들었다. 나를 믿고 함께 해 준 소중한 분들인데 그들을 힘들게 만든 것이다. 힘든 것은 힘든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가치를 실현했다고 해도 힘든 것이 힘들지 않은 것이 될 수는 없다.

 

 

이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를 위로하기도 하고, 나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동기부여도 해주고. 그러나 내 머리속은 독립군이야기에서 더 이상의 말들을 수용하지 않았다. 사실 살면서 가장 충격적인 조언 중 하나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후배는 자리를 파할 때 내 윗옷 주머니에 봉투를 찔러 넣었다.

 

 

"저도 지금 열심히 회사를 키우는 중이라 넉넉치는 않아요. 힘내세요."

 

 

집으로 향하는 길에  봉투를 열어보니 현금 100만원이 들어 있었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충격적 조언 중 하나였던 그 사건이 오늘 아침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해야할 때, 나는 무엇을 따를 것인가에 대한 고민중에 다시 떠올랐다. 

 

 

도대체 난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내가 추구하는 그 숭고한 가치라는 것이 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면서까지 해야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내가 한 가지 큰 착각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우주의 중심이다.'

 

 

이 교만함과 근거없는 자신감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그리고 가장 많은 상처를 받았을 내 가족과 주변 소중한 사람들 생각을 하니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럽다. 

 

 

내가 항상 옳고 가치있다는 이 엄청난 착각을 산산히 부수지 않고서는 더 이상의 배움과 성장도 없다는 것을 느꼈다. 아울러 상대를 배려하거나 존중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부족함을 인정하자. 그리고 내 가족과 주변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내가 아닌 이들의 바람과 이익을 위해 결정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보자.

 

 

나는 독립군이 아니다.

 

 

사족: 독립군의 삶은 분명 숭고합니다. 그리고 추구했던 가치도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저는 다만, 저 혼자 잘난 맛에 내 가족과 소중한 주변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함을 후회하고 반성하며 이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