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연결의 강한 힘

[황성진의 소셜이야기] 인생의 멘토이자 은인, 유영만 교수와의 첫 만남 (하)

광개토황 2014. 6. 26. 13:22

인연은 감동적인 기적을 만들고...

 

 2013년 4월 3일... 그 무렵은 나에게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소셜노트라는 회사를 만들고 그 회사를 법인으로 등록해야 하는 시점이었던 것이다. 지금 와서 이야기 하는 거지만, 그 때 나의 주머니 사정은 좋지 않았다. 통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정말 절실했다. 시기적으로 그 때를 놓치면 성장할 수 없는 상태였다. 답답한 마음에 나는 형.아우 사이로 지내던 영만이 형(유영만 교수)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런 저런 연유로 제가 회사를 설립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다. 딱 3초만에 답장이 왔다! ‘지금은 내가 수업 들어가야 하니까, 수업 끝나고 난 뒤에 연락하자.’

 

정확히 작년 4월 3일. 나는 그 날짜를 절대 잊을 수 없다. 나와 혈연도, 지연도,학연도 없이 오로지 정연(정보인연)만이 존재했던 영만이 형은 그 날 ‘그러면 내가 도와야지. 아우를 도와야지.’ 라고 말하며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9시 30분에 급하게 개설한 계좌로 자그만치 5천만원의 돈이 들어왔다. 그날 소셜노트라는 회사는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눈물 나는 일이었다. 특별하게 연결된 하나의 인연은 생면 부지의 나에게 매우 큰 감동을 선사했다.


<회사설립 전날 유영만교수님께 달려가서 향후 계획에 대해 말씀드렸다>

 

한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4라는 숫자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4라는 숫자가 가진 어감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4라는 숫자를 제일 좋아한다. 일단 남들이 싫어해서 좋고, 방향을 안내하는 기능성(?)이 좋고, 한글 '사'자와도 흡사하고...등등의 이유이다. 작년 4월 4일은 삶의 터전이 된 ‘소셜노트’의 창립 기념일이 되었고,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날짜이기 때문이다. 사실 누군가에게 5천만원이라는 돈을 선뜻 투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이야기를 내 주변의 누군가에게 하면 사람들 모두가 다 놀라곤 한다.

 

감사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 찾아간 나에게 영만이 형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분이 뭔지도 몰라. 주식이 뭔지도 몰라. 너 믿고 투자하는거야. 묻지마 투자야. 5,000만원 가져가서 5천억짜리 회사로 만들어봐. 5천억 벌어.” 현재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소셜노트’에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도리어 지금은 우리 회사의 현재 가지고 있는 잠재성과 비교불가 가치 때문에 여기저기서 투자를 하겠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때의 영만이 형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소셜노트’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맞다.

 

내가 진짜 감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당시 유영만 교수는 베스트셀러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많은 강연을 하고 계셨었기 때문에 나를 위해 투자한 5천만원 정도는 식구들은 잘 모르는 비자금(?) 정도라고 나는 생각 하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일상적인 자리에서... 지나가는 말로 ‘내가 돈이 어딨어. 형수가 해 준 거지!’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너무도 죄송하고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미 이전에 비슷한 이유로 가까운 사람에게 5천만원을 빌려주셨다가 되돌려 받지 못한 이력이 영만이 형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래서 두 부부사이에 다툼도 있었다고 했다. 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아닌가

"‘형수님이 해줬단 말이에요? 정말이에요?" 나는 너무 놀라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사실 형수님은 나중에 사석에서 만나 들은 이야기지만 나와 영만이 형이 늘 함께 하고 서로 신뢰하는 것 같아 흔쾌히 수락하셨다고 했다. 형수님이 그렇게 결정했다는 것에 놀랐고, 아무것도 볼 것 없는 나를 두 분 모두가 믿어 주셨다는 생각이 들자 콧등이 시큰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솔직히 영만이 형의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두 자녀들이 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어서 결코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 아주 무거운 돌덩이에 내 가슴이 짓눌리듯 묵직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았다. 그리고, 두 분이 요구하지 않은 ‘차용증’을 써 드렸다. ‘형님 연말까지 꼭 갚겠습니다. 12월 31일까지요. 이자는 없습니다. 그치만 형님, 그 대신 제가 저희 회사 주식으로 이자를 드릴게요.’

 

나를 믿어 주신 두 분과의 그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 해 12월 28일 정확하게 돈을 되돌려 드렸는데, 사실 나로서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손해를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했다. 내 주식을 팔아서 그 약속을 지켰으니 말이다. 어쨌든 약속이었고, 이전의 아픔을 불구하고 나를 믿어 준 두 분에 대한 예의이자 존경의 의미였다. 그리고 이후 약속대로, 도와주신 부분에 대한 이자 대신에 회사 주식 1만주를 드렸다. 이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너무나 행복했다. 

 

생각해 보면, 소셜에서 만난 유영만 교수와의 인연은 하늘이 나를 위해 마련한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감동을 준 특별한 삶의 조각이었다. 나는 그 인연의 기회 때문에 어려운 상황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고 인생의 낯선 따뜻함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고마워요. 영만이 형”



<함께 떠난 '상해는 야해' 여행, 상하이에서 멋진 추억을 만들었다>


<'유영만&황성진의 체인지' 라는 토크쇼에 데니스 홍교수님이 초대손님>


<'유영만&황성진의 체인지' 라는 토크쇼를 유영만교수님 연구실에서 녹화>



<유영만교수님 출판기념회에 초대될 때엔 이렇게 등장하곤 했다>


<'유영만&황성진의 체인지' 라는 토크쇼 맛 좀 보세요>



인생의 멘토이자 은인, 유영만 교수와의 첫 만남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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