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진의 단상

[황성진의 성공3.0]착하게 살고 싶다고? 당장 독해져

광개토황 2012. 6. 26. 11:35

착함은 목표이고 독함은 수단이다


나는 여전히 '착한 사람'을 꿈꾼다. 착함이야말로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인생의 목표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무엇이 착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면 막연한 '착한 사람 되기'는 온당한 목표라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지난 번 포스트(http://bridgepeople.tistory.com/22)에서 말했듯 나는 친구와의 대화에서 무엇이 착한 것인지에 대해 즉시 답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조금씩 내 나름의 정의를 갖게 되었다.

그 힌트를 준 사람은 20세기와 21세기를 풍미한 위대한 경영이론가 피터 드러커였다. 그분이라면 이렇게 단순하게 정의했을 것이다. "자신의 강점을 바탕으로 자신의 일을 잘해냄으로써 타인과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다."

일이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의 입장에서 피터 드러크의 시각은 매우 적절해 보였다.

<사진: 피터 드러커, 이미지 출처: http://photo-media.daum-img.net/200911/06/seouleconomy/20091106163118869.jpeg>


가족, 직업, 지역사화, 종교, 친구집단 등 자신이 처한 삶의 현장과 여러 인간관계들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공헌'하는 것이야말로 착함이 아닐까?

타인과 사회에, 그리고 역사에 유익을 끼치는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 대해서는 위대한 삶을 살고 간 위인, 현자들뿐만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착한 삶에 이르는 여러 가지 길들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는 착함에 이르는 매우 효과적이며 강력한 수단으로서의 독함을 발견했다. 물론 사악한 사람들도 독함을 활용하고 있고, 이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독함은 착함을 목표로 이용될 때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 앞으로 그 증거들을 종종 제시할 것이다.


착한 사람들에게는 인생을 걸 만한 가치와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그들은 여기에 지독하게 몰입했다. 다른 사람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독하게 절제하고 자기관리했으며, 근검하고 성실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매정하게 대하기도 했다.(실제 속사정은 다르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착하게, 옳게 살면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려면 스스로를 독하게 단련하고 절제하며,치열하게 일하고, 근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삶 속에서, 책 속에서 만나고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착한 사람들이었다. 또한 그분들은 모두 독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독함은 착함에 이르는 강력한 수단이었다.

요컨대 착해지려면 독해져야 한다. 착하게 살고 싶다면 독하게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