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진의 단상

[황성진의 단상] '살고 싶은 삶'을 살아라

광개토황 2011. 3. 29. 08:48

그대들은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 ‘살고 싶은 삶’이 있는가?

무엇을 위해 우리는 그렇게도 땀을 흘리는가?

오늘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지도 모르고 오로지 스펙 쌓기만 하고 있다면 그대의 삶은 슬프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떠한 것인지 생각해보라.

생각만으로도 가슴 뛰는 그런 그대들의 꿈을 새겨라.

그것이 이루어질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말라.

지금 그대가 해야 할 일은 오로지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그대가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 삶은 너무 슬프지 아니한가?

 

그대는 이 生(생)을 다한 시점에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나는 그대들에게 ‘묘비명’을 새겨볼 것을 권한다.

내 삶을 마친 그 순간 새길 묘비명을 지금 새겨보길 바란다.

그리고 역산하여 지금의 삶을 계획하기 바란다.

이것은 마치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먼저 입력하는 것과도 흡사하다.

아무리 성능 좋은 네비게이션도 목적지를 입력해주지 않으면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다.

 

“자기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을 활용하여 성공한 사람 여기 잠들다” 바로 데일 카네기의 묘비명이다.

“썼노라, 살았노라, 사랑했노라”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의 묘비명이다.

이렇듯, 묘비명에는 한 사람의 삶과 가치관이 온전히 녹아 들어가 있다.

나는 이러한 묘비명을 과거형 묘비명이라 칭한다.

이미 죽고 난 뒤에 그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로서 유머와 독설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조지 버나드 쇼는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라는 유명한 묘비명을 남긴다.

그런데 이 묘비명은 그가 죽기 오래전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나는 이러한 묘비명을 미래형 묘비명이라 칭한다.

그는 왜 살아생전에 그런 묘비명을 만들어 두었을까? 아마도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살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을 다잡으려고 미리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그는 늙어서도 집필, 강연, 사회운동으로 그 누구보다도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94세에 세상을 떠났다.

 

“잘 놀다 갑니다” 혹시 이 묘비명을 본 적이 있는가? 바로 나의 묘비명이다.

나는 정말 후회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매사 즐기며 살고자 한다.

이 묘비명이 탄생한 계기는 이랬다.

1년 전 수술을 했다. 곧 이어 아내도 수술을 했다. 한달 내내 서로 병수발을 들었다.

그때 불현듯 이러다가 내가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하는 내면의 울림을 느꼈다.

그리고 만일 3개월 후에 내가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막상 생각이 이 지경에 닿으니 내 삶을 근원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을 위해 그리도 치열하게 살았을까?

지금 살고 있는 삶은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인가? 아니었다.

그럼 3개월 후에 죽는다면 지금 무엇을 하지?

 

내 선택은 이랬다.

2개월 동안 열심히 내 아들과 딸이 읽어 삶의 지침이 될 수 있는 책을 집필한다.

내 아들과 딸이 읽을 책이니 그 동안의 모든 경험과 지식을 녹여낼 것이다.

그리고 1개월 동안 살아오며 소중했던 인연들을 찾고 소주 한잔 기울이고 싶다.

미안한 일에 용서를 구하고 또 상처받았던 일에 용서를 하고,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랜디 포시의 마지막 수업처럼 가족들과 지인들을 한 자리에 모아 마지막 소통을 하고 싶다.

난 “잘 놀다 갑니다”라는 묘비명을 새기기로 했다.

정말 하루하루 재미와 의미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 후회 없이 도전하고 즐기고 싶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선언하고 지금 그 길을 열심히 걷고 있다.

책, 방송, 강연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물론 쉽지 않음을 안다. 당장 부딪혀야 하는 난관도 많다.

하지만 주위를 잘 돌아보라.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다 지나온 삶을 후회하는 많은 사람들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들이 삶을 마칠 때 과연 지나간 시간들이 행복하다고 느낄까?

그러니 정말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삶을 생각해보기 바란다.

어차피 우리네 인생은 시한부 인생이다. 그 누구도 천년 만년 살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언젠가 훌쩍 지나가버린 세월 앞에 “참 세월 빠르네”하는 탄식을 내뱉지 말고 “정말 즐겁게 살았다”라는 만족감을 맛보기 바란다.

 

그대들이여…

한 발 내딛는 데는 정말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 발 내딛기만 해도 ‘살고 싶은 삶’의 참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 개인의 일을 일반화하기는 힘들지만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라.

한결같이 “후회 없이 도전하고 즐겁게 살아라”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앞으로 열릴 세상은 그대들의 ‘살고 싶은 삶’의 스토리를 원할 것이다.

 

묘비명을 새겨보라.

그대들이 새긴 묘비명이 그대들의 삶을 이끌어 줄 것이다.

용기 있게 한 발 내딛길 독하게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