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endipity 2022

오십에 읽는 논어

광개토황 2022. 1. 13. 09:44

"야이야,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가꼬 평범하이 살아라이. 알겄제"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저희 엄니께서 손자에게 건넨 덕담입니다. 아마 제 기억이 맞다면 2018년, 아들 현우가 고3때였던 거 같습니다. 추석 덕담을 전하시는 데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사실은 속으로 눈물을 삼켰습니다.

왜 이런 덕담을 하셨을까? 오늘 아침 묵상하다가 이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열심히 노력해서 평범하게 살아라는 말은 문맥상 매끄럽지 않습니다. 그런데 좀 살아보니 이 말이 참 묘하게 맞는 말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보통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이건 어느 정도 살아봐야 체득하는 지혜가 아닌가 합니다. 요즘 같은 세상은 정말 열심히 노력해야 보통의 삶을 겨우 사는 것 같습니다. 어쩜 저희 엄니께서는 그 깊은 지혜를 어린 손자에게 전하려했는지 모르지요.

그 덕담을 전할 당시 상황은 이랬습니다. 나름 열심히 노력했고 세상에 없던 가치를 만들겠다는 포부와 자부심으로 충만해서 운영한 '쉐어앤케어'라는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온 영혼을 바쳐 열심히 운영했습니다. 진정성과 투명성을 제대로 보여주며 대한민국에 새로운 기부문화를 만들어냈다는 자부심도 잠시,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비즈니스는 결국 그해 7월에 종료하게 됩니다. 정말 아쉬웠고 안타까웠습니다. 수많은 빚을 지게 된 것은 차치하고 걱정되었던 것은 아들이 그 해 고3이었다는 것입니다. 왜 하필 고3이라는 그 중요한 시기에 시련을 안겼을까 자책하던 그 시기, 엄니께서는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는 손자에게 이런 덕담을 하셨던 겁니다.

이해됩니다. 아들이 그 위험천만한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그 결과마저도 안 좋았으니 얼마나 위험해 보였겠습니까. 저에게도 이런 말씀 많이도 주셨습니다.
"고마하고 그냥 직장생활하면 안되겄나? 사장이람서 월급도 제대로 안 챙겨오면서 뭐한다고 사업하노. 고마 직장에 들어가 따박따박 월급받는 기 최고다."
그 때마다 속으로 '엄니,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 지금은 옛날과 많이 달라요.'
그냥 삭힙니다. 안 그럼 또 언성이 높아지며 싸우게 되니까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실겁니다.

지나보면 느끼게 됩니다. 엄니 말씀은 하나도 버릴 게 없다는 것을. 엄니 속에 부처님,예수님,공자님이 계신다는 것을.
좀 살아보면 평범한 삶이 얼마나 축복인지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오늘 하루 깊이 새겨보고자 합니다.

요즘 세런디피티는 책에서도 일어납니다. 올 초에 사서 아침마다 조금씩 읽으며 묵상하고 있는 책입니다. 최종엽 작가님의 '오십에 읽는 논어' 라는 책입니다. 아주 깊이 있게 우려낸 사골곰탕같은 책입니다. 오늘 이 이야기도 이 책의 한구절을 읽고 묵상하다가 떠오른 것입니다. 올해 아무래도 제가 운이 엄청나게 좋나봅니다.^^ 이 기운 여러분께도 전합니다. 그리고 일독을 권합니다.

오십에 읽는 논어 -최종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