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endipity 2022

주는 것이 행복할까 vs 받는 것이 행복할까

광개토황 2022. 1. 17. 13:54

주고 싶으세요? 받고 싶으세요?

과연 주는 것이 행복할까요? 받는 것이 행복할까요?

오늘 묵상중에 떠오른 질문입니다. 그러다 행복은 과연 뭐지? 하는 생각으로 꼬리를 뭅니다.

 

요즘은 그야말로 행복의 시대입니다. 행복이라는 글과 말이 넘쳐납니다. 수많은 방송, 강연이 쏟아집니다. 'YOLO', '소확행'같은 담론들이 쏟아집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는 내 행복을 마구 뽐냅니다. 다들 다 행복하게 사는구나. 나만 힘들구나 하면서 더 움츠려듭니다. 행복해지는 비법이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다는 불안감이 스며 듭니다.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죠. 진짜 그럴까요? 모두가 지금 행복에겨워하고 있을까요? 

 

사회심리학자 김태형은 그의 저서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에서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행복 열풍은 행복하지 않은 현실, 즉 불행에 대한 인류의 집단적,사회적 반응"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에 신경쓴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사회 전체에 만연한 불행의 징후라는 것입니다. 공감되시죠?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유명한 김난도 교수님은 에세이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에서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일상"이라고 하셨습니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일상 속에서 아주 소중하고 조금 느낄 수 있는, 이내 사라져 버리는 감정인데 현대사회가 지나치게 행복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넌 행복해야 해. 남보다 더 가지고 더 여행해야 해. 안그럼 불행한거야." 라고 푸시합니다. 그러다 보니 행복에 강박이 생겨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게 만듭니다.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불행하다는 것은 아닌데 말이죠.

 

한마디로 행복 산업입니다. 행복이라는 키워드로 다양한 산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당분간은 많은 사람들이, 기업들이 여기에 집중하겠죠. 돈이 흐르고 있으니. 이게 자본주의 속성이자 영악함이구요.

그런데 이런 걸 막을 길은 없겠지만 아쉬운 게 있습니다. 이 행복 산업이 계속 개인의 행복만 강조합니다. 개인이 모여 이루어진 사회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습니다. 미세먼지가 심해서 공기의 질을 바꾸어야 하는데, 자꾸만 기능 좋고 이쁜 마스크를 쓰면 행복을 느낄거라고 합니다. 택배 노동자들이 피로에 쓰러지고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내 행복이 담긴 택배상자를 애타게 기다리며 조금의 늦음에 화를 내고 있습니다. 사회는 모르겠고, 나라도 행복하면 되지 않겠냐고 계속 이야기를 걸어 옵니다. 나만 행복하면, 사회와는 상관없이 나라도 행복하면 그게 진짜 행복일까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사회와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너무 원 주제에서 벗어나서 이제 다시 원래 떠올랐던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주고 싶으세요? 받고 싶으세요?

과연 주는 것이 행복할까요? 받는 것이 행복할까요?

 

저는 20대에 저의 좌우명을 정했습니다. '먼저 아낌없이 주라'

살면서 한번도 후회하지 않은 제 삶의 절대가치였습니다. 주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받으면 행복감을 느낍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근데 바꿔 생각해보니 누구나 받으면 행복하니 내가 계속 줄 수 있다면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 행복감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것이 자뻑이어도 좋았습니다. 결국 행복이란 게 자신의 만족에서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살면서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향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소명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살면서 쌓아온 모든 역량을 동원해 '쉐어앤케어'라는 기부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여기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습니다.) 잘 되었고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고 자부했습니다. 하지만...

변변한 수익모델이 없는 서비스는 결국 망했습니다. 지속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망비보: 망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라는 글에서 최근 망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 좌우명이 담겨있는 액자를 깨부셨습니다."

 

자료출처: "소셜 나비효과로 세상 바꿔요" 황성진쉐어앤케어 대표 (중앙일보)

 

제 그릇은 계속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기에는 역부족임을 인정했습니다. '먼저 아낌없이 주라'는 좌우명에 매몰되어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나누어야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스스로 설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설 수 있고, 그 단단한 기반속에서 지속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넘치는 잔을 만들고 그 넘치는 것들만 나누어도 충분히 훌륭한 삶이라는 것을 반 백년 가까이 살면서 처절히 깨지고 난 후에야 깨우쳤습니다.

액자를 깨면서 나부터 잘 살자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다 필요없고 내가 잘 살고 행복해지자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거기서 행복감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제가 깨닫게 된 것은 제 좌우명이 잘 못된 것이 아니라 그 좌우명대로 살기 위해 더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에 매진하는 것이 제가 궁극으로 행복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운영하고 있는 쏘셜공작소라는 회사의 미션이자 슬로건은 "지속가능한 세상을 공작한다." 입니다. 이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는 것이 제가 앞으로 할 일입니다.

 

요즘 저는 많은 세런디피티(Serendipity)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절망하지 않고 지향했던 그 가치들을 향해 사람들이 모여들고 서로 시너지를 만들 수 있는 판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지금 행복합니다.

 

저는 오늘 주는 것이 행복하다로 결론을 내립니다.

 

 

2022.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