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연결의 강한 힘

[황성진의 소셜이야기] 연결된 세상의 외로운 사람들

광개토황 2014. 10. 8. 06:58

우리는 초연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멀리 떨어진 사람과도 교류 할 수 있고, 그들의 생각에 공감하거나 또 다른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도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상대적인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해 하고 있고, 감정적인 삶의 돌파구를 찾으려 애를 쓰고 있다. 무엇이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다음의 사진 두 장을 살펴 보기 바란다. 




두 장의 사진에서 살펴 볼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사진들의 등장인물들이 같다. 사실, 이 두 장의 사진은 5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동일한 사람들이 모여서 찍은 사진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 사이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가?

 

사람들은 표정을 잃어 버렸고 모두들 스마트폰을 응시하고 있다. 적어도 이 사진만 보자면, 스마트폰은 이들에게 대화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빼앗아 버렸다. 조금만 진솔해져 보자.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매우 흔한 현상이 아닌가?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초연결 시대에 사람들은 이전 어느때 보다 많은 연관성들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는데, 왜... 의외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사람들은 없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은 과연 없는 것일까?

 

개인적인 나만의 생각일지는 몰라도, 중독되어 있듯 스마트폰에 몰입하는 이 사회의 모습은 ‘더 이상 외로워지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프라인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대다수가 이미 온라인을 통해 더 넓은 세계 안에서의 더 많은 사람들과 연관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 안에서 소외 될까봐 오히려 자신을 알리고 찾는 일에 연연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사람들의 ‘집단 소속에 대한 열망’이다.

 

정확히 말해, 어딘가에 소속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안정감’을 원한다. 그러다 보니, 어디엔가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 그걸 가지려고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집중하곤 한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뭐하고 있는지라도 보고 있어야 그런 소속감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이 소외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소속감을 위한 “소통”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한자의 “인간(人間)”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의미한다. 좀 억지스런 논리일지는 몰라도, 이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뭔가가 있어야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말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걸 메워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소셜이라는 도구이다.

 

가족들과의 대화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리고 밥상 머리에 앉아서, 스마트폰이라는 그 속에서 얼굴도 모르는 외부 사람들과의 교감이나 대화가 더 많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어울려 살고자 하는 경향을 가진 인간이 온라인이라는 공간 안에서 맺어진 인연들에 더 연연하는 형국인 것이다. 초연결 시대임에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반대급부 적으로 더 많은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스마트폰 알림 소리에 반가워하고 친구들의 글에 ‘좋아요’를 날리는 일에 익숙해 있다. 당신은 이런 삶의 모습들을 어찌 받아들이는가?

 

물론, 이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치만, 반대로 보자면 이것은 사람들이 나를 잊지 말았으면 하는 욕망 때문이기도 하다. 소속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이러한 현상 뒷면에 존재하는 것이다. 무엇이 올바른 사회적 흐름이 되어야 할까? 우리는 보다 합리적이면서 관조적으로 작금의 현상을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 본 대로, 우리는 ‘약한 연결’의 ‘강한 힘’을 느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우리는 스스로의 역량을 키워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는 차원에서 봐야 한다. 즉, 이것은 하나의 흐름이며, 그렇다고 본질적인 것을 도외시 할 수는 없는 문제라는 이야기이다. 현실의 것들을 도외시 하거나 대치하고 그것들에 감정적으로 맹목적인 “올인”을 한다는 것은 무가치하고 비합리적인 태도이다.

 

다시 말해, ‘약한 연결의 장’을 접한 다는 것은 우리가 전혀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회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는 것이지, 만남이나 인연 그 자체를 대치하거나 대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약한 연결’은 이제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것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것도 나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될 말이다. 누군가 페이스북 친구라 할찌라도 그가 ‘진짜 친구’ 인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별개의 문제이다.

 

약한 연결은 분명 우리의 삶을 더 상승시킬 ‘가능성의 장’이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인간성이 상실될 정도의 집착이나 ‘기대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가능성의 시대에 살면서 우리가 외로워지지 않는 방법은 우리가 가진 본질적인 생각을 늘 기억하고 놓치지 않는 일이다. 결국, 인연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이유이다.